유 혹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더욱더 철저히지키라고 말씀 하십니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단순히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규정이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욕하는 것도 형제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에 간음해서는 안 된다 했지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맡긴다는 미명으로 모든 것을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요즘 시대에 일침을 가하는 말씀입니다. 옛 시대 보다도 영화나 동영상에 폭력적인 장면과 성적인 장면들이 넘쳐나는 요즘은 유혹이 너무나 강한 시대입니다. 유혹에 대처할 방법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하십니다. 눈을 뽑고 손을 자를 마음을 먹을만큼 단단히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유혹에 넘어가면 고백성사를 보시고 또 유혹에 넘어지면 또 성사를 보시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유혹이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제1독서 집회서에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하는 말씀은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을 선택하지 않고 불장난을 선택하면 죽음이 다가올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결과는 아주 명확한 것 같은데 왜 우리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까요?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 먹는 범죄를 한 후에 우리 영혼이 손상을 입어 죽음 쪽으로 더 잘 기울기 때문입니다. 유혹에 쏠리면 우리의 눈이 어두워져 죽음을 품고 있는 선악과가 훨씬 탐스러워 보이고 먹음직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폭력적인 장면이 더 재미있고 성적인 장면이 더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이미 죽음으로 더 쏠려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생명을 살린 일 보다 살인을 한 일이 더 크게 나오는 것도 사람들이 죽음의 문화에 더 쏠려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생명 보다 죽음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유혹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마태오 복음 12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웃들을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성내는 마음도, 욕설도, 음욕을 품는 것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누이에게 음욕을 품지 않듯이 모든 여성을 누이와 어머니로 생각하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하늘나라에 가면 모두가 우리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들이니 말입니다. 유혹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결심하는 한 주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

– 종신부제 곽상환 임마누엘 –

2020년 2월 16일 제2238호 주보,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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