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린양

세례자 요한은, 바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날에, 어린양 한 마리씩을 잡아 문설주에 그 피를 바름으로써, 이집트의 맏자식들은 다 죽었으나, 죽음의 사신이 피 묻은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거르고 지나가서, 이스라엘 맏자식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이집트인들의 집에서는 곡성이 터져 나왔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결국 파라오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다. 이는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설명이다. 여기서도 어린양은 이스라엘의 맏자식을 대신하여 죽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은 바로 이 어린양처럼 그렇게 인간을 위해서 대신 죽어줄 어린양 같은 존재라고 증언하고 있다. 남은 살리고 자신은 죽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예수님이라고 증언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다. 즉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 위에 성령이 내려와 머물거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 즉 구세주이심을 알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나는 그분에게 성령이 내렸음을 보았기에, 나의 증언은 진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존 미심쩍은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다.” 이는 분명 모순입니다.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나보다 앞선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유다인들이 예수께 “당신이 아직 쉰 살도 못 되었는데 어째서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고 하셨다. 이는 정말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다.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를 치려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와 함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토록 계실 분이시라는 것을 세례자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세례자 요한의 위대성은 바로 그러한 모순을 영성으로 꿰뚫어 봄에 있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두 번씩이나 “나는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고 경탄하면서 자신의 사촌 예수께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알아본 최초의 증인으로 주님으로부터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일찌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마태 11,11).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라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오늘도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을 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기도와 체험이 있어야 한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 성령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라고 누구에게라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임신부 고봉호 베드로-

2020년 1월 19일 제 2234호 주보,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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